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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감성적인,어쿠스틱 기타,카오스 사운드,몽환적인 보컬

엄마의 찬장을 열다가- 고민경

03:24 | 18일전

한 자리에서 나이 든 찬장을 열어본다
고슬고슬한 굵은소금이 보이고
고춧가루가 보이고 집간장이 보이고
곰삭아서 제몸 풋고추에 둘 둘 말은 황석어젓이 보이고
종제기에 담긴 해묵은 보리고추장이 내 손을 잡는다.
찬장 귀퉁이에 내려놓은 엄마의 한 숨소리와
한량인 아버지가 만경강에서 잡아 온 깡마른 망둥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눈물 나게 보고 싶은 그림이다.
내성적이면서 온순하고 정이 많으신 우리 엄마는 생전엔 유독
쉬는 날이 없었다. 허름한 초가집 골방에는 늘 사람들이 모였고
두 서넛 앉으면 엉덩이 부딪치는 말캉에는 벗기다 만
엄마의 고구마순이 나를 기다렸다. 우리 엄마의 손은 요즘 말하는 금손이다.
뚝딱 뚝딱 만지작거리면 구수하고 칼칼한 반찬이 동네 오빠들을 모이게 했다. 어머니는 늘 바빴고 고단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철딱서니 없는 그 시절 미안함이 이제야 밀려온다. 후회해도 어쩌겠냐만 아릿하다
어머니와 추억이라곤 치매 걸리고서 20일정도
같이 출근하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자고 같이 퇴근했던 기억이
나에게는 큰 추억이었다 애기가된 어머니에게 밥 한숟갈 떠드리면
다 큰 딸 숟가락에 어머니처럼 앉아 있는 하얀 고봉밥 그 위에
돼지고기 한 점 크게 올려주셨던 엄마
그렇게 1978년은 엄마의 정신으로 나머지 10년은 어린애의
삶으로 사시다가 나에게 사람 대하는 정을 말로써가 아닌 온몸으로
가르치셨다.
얌전한 우리 어머니 찬장을 열어보니
왕구슬 사탕이 있고 눈깔사탕이 있고 쪽득이가 있고 라면땅이 있다.
가슴 미어지는 그림이다
엄마의 찬장을 열다가
창문 너머 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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